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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선거광고 상록수 (기타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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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뒈져야할놈들은 꾸역꾸역 잘도 살아가는데..

노무현대통령은
활활 타오르다가 언제 그리 뜨거웠나싶게 잦아드는 불씨가 아니라
영원히 은은한 별이 되셨으면 좋겠다.
 
 
 
---
노 전대통령은 부엉이 바위에 도착했을 때 동행했던 경호관에게 “담배가 있느냐”고 물어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경호관이 “가져올까요”라고 묻자 노 전 대통령은 “가지러 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또 노 전 대통령측의 한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은 당시 바위 아래로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본 뒤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담담하게 얘기했다고 당시 근접 경호를 했던 경호관이 보고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후 곧바로 바위 아래로 뛰어내렸으며, 경호관이 즉각 호송 조치를 한 뒤 이를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향신문펌-

국회의원때도, 대통령때도 그렇게 간지가 나더니
마지막까지 간지쟁이셨네 담배있느냐라니...

광주항쟁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위중인 노무현


87년 ys와 군사정부의 야합을 반대하다 끌려나가는 국회의원 노무현
우리 기술로 만들어진 잠수함,훈련기,인공위성의 프라모델을 곁에 둔 대통령 노무현




이라크 파병된 우리군부대를 방문한 노무현
△ 아세안+3정상회의 및 유럽3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던 노무현대통령이 일정을 바꿔 8일 오전(현지시간) 한국 자이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이라크 아르빌을 전격적으로 방문한 뒤 이동하는 지프차량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에르빌/탁기형 기자

노무현대통령의 자이툰부대 방문 코드명 "동방계획"

4. 아르빌

어쩌면 아르빌은 언제나 대통령의 마음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어느 날 문득 그곳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남미 순방을 마치고 밤늦게 귀국하고 나서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던 11월 24일 수요일 오후. 여독과 시차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통령은 피로를 감추지 못한 모습으로 부속실 직원을 찾았다.

“아무래도 이번엔 그쪽으로 가는데, 오는 길에 아르빌을 들러봐야 되지 않겠나? 누구한테 어떻게 지시를 해야 할지 준비해 주게.”

그것이 작은 시작이었다. 대통령은 아르빌 방문을 거창한 프로젝트로 생각하지 않았다.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르빌 방문계획이 최종 확정되고 실행에 옮겨지는 그 순간까지 대통령은 노심초사하지도 않았고 남달리 긴장하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한 표정으로 임했을 뿐. 아니 오히려 정확히 말하면 이 계획에 관한 한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모든 준비는 실무진에 전적으로 일임했다. 그 침묵이 담대함이었는지 또 다른 긴장이었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 노무현 대통령이 12월 7일 특별기내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아르빌 방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다음날인 11월 25일 목요일 오전, 본관 집무실. 대통령은 비서실장과 NSC 관계자들이 함께 한 자리에서 아르빌 방문의 검토를 공식 지시했다. 대통령 지시는 간단했다. 프랑스 방문이 끝나는대로 아르빌로 가자는 것. 어떤 전제조건도 없었고 어떤 추가단서도 없었다.

이날 오후 부속실 직원이 대통령에게 물었다.

“혹시 그곳에서 1박을 하실 계획이십니까?”

보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대통령이 대답했다.

“내가 거기서 자면 거기 사람들은 얼마나 또 힘이 들겠나?”

출국을 하루 앞둔 27일 토요일 오전. 관저 접견실에서 열린 회의에서 계획이 최종 확정됐다. 바뀐 비행항로가 그려진 지도 위에 ‘동방계획’이라는 글자가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순방 끝 방문이라 보안상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 2005년 설날을 전후한 방문 안이 논의되기도 했으나 그것도 잠시. 결국은 이번이 적기라는 판단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통령은 대강의 설명을 듣고는 계획을 승인했다. 끝까지 설왕설래가 있었던 것은 언론 통보시점과 엠바고 문제. 이 역시 묵묵히 듣고 있던 대통령이 정리를 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문제는 언론도 잘 협조해 줄 겁니다. 믿고 해야죠.”

그리고 잠시 후 대통령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또 알려지면 알려진 대로 가야죠. 괜찮을 겁니다.”

계획을 알고 순방길에 나선 몇몇 참모들은 마음에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계획이 허점 없이 잘 짜여진 것인지, 또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는 없는지 조바심이 났지만, 그렇다고 순방국 현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돼 있었다. 라오스 방문을 마치고 영국 런던에 도착한 날 밤. 관계자들 회의가 심야에 열렸다. 주로 서울에서의 준비상황을 들은 다음, 현지에서 챙겨야 할 사항들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최대 고민은 역시 일정변경에 따른 보안 유지와 원활한 송고 서비스 문제였다. 다음날 아침, 간략히 준비상황을 보고 받은 대통령은 ‘알았다’는 답변과 함께 다시 한·영정상회담 준비에 몰두했다.

파리에 도착한 12월 5일 일요일. 마지막 점검회의가 열렸다. 아르빌 방문 이틀 전이었다. 서울에서 온 구체적인 시나리오와 함께 상당히 두툼한 보고서가 부속실로 전달됐다. 쿠웨이트와 이라크 당국에 양해를 구하는 대통령의 친서도 작성돼 있었다. 대통령의 서명이 필요했다. 밤이 깊어가던 10시 무렵. 대통령은 다시 간략한 보고를 받고 친서에 서명했다. 두툼한 준비 자료도 건네받았지만, 대통령은 비행기에 탑승한 뒤에 볼 수 있도록 챙겨달라며 되돌려주었다.

이틀 후인 12월 7일. 당초 계획보다 지연된 출발 시간으로 여유가 생기자 대통령은 선뜻 퐁피두센터를 찾았다. 광주문화중심도시를 염두에 둔,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다. 대통령은 특별히 도서관의 운영 방식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하면서 많은 질문을 던졌다. 영빈관으로 돌아온 대통령은 간단한 식사를 마친 후 이번 순방 공식수행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그리고 드골공항행.

▲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아르빌 자이툰부대를 방문해 장병들과 악수하며 격려하고 있다.

쿠웨이트 행 특별기가 이륙하자 대통령은 예정대로 기자들 앞에 나가 아르빌행을 설명하고 협조를 당부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대통령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런 모습이 가장 훌륭한 연출이 되었다. 이어서 기내 준비회의가 열리고 대통령은 그때서야 비로소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보고받았다.

아르빌 현장 분위기는 말 그대로 대환영. 아무리 정교한 각본으로도, 그 어떠한 장치로도 만들어낼 수 없는 감동이 그곳에 있었다. 오히려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연출하려 했다면 그런 장면은 결코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꾸밈없이 솔직한 대통령, 권위주의를 벗어던진 친근한 대통령, 그러면서도 언제나 변화하고 도전하는 대통령이었기에 가능한 장면이 아니었을까?

대통령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아르빌 방문은 진짜 잘한 일’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대통령은 특별히 대꾸하지 않는다. ‘잘한 일’이라기보다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일 것이다. 아르빌 방문으로 지지도가 상승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을 때 대통령은 고개를 갸웃하는 표정이었다. 지지도의 상승을 기대하며 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아르빌을 가듯이, 꼭 그 각오와 그 자세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의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출처: 청와대브리핑
http://16cwd.pa.go.kr/cwd/kr/archive/archive_view.php?meta_id=column_government&id=7ef150d7469dc142dda8506

“이 비행기는 서울로 못 갑니다.

” 일순 한국 공군 C-130 수송기가 흔들렸던 것은 난기류 때문이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순방 일정을 마치고 서울을 향해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을 뜬 직후였다.

서울로 못 간다니! ‘그럼, 평양으로?’ 요동하던 기체가 안정을 되찾자 노 대통령은 그 ‘폭탄선언’에 휘둥그래진 눈과 웅성거리는 입들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쿠웨이트에 들러 아르빌로 가야겠습니다.

” 자이툰 부대 배치가 모두 끝났고, 연말을 기해 먼 이국 땅에 나와있는 장병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겠다는 의미였다.


이미 지난달부터 ‘007첩보 작전’을 무색케 하듯 극비리에 추진돼 온 그 일은 작전명 ‘동방계획’. 위성 전화는 일제히 끌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보안을 위해서. 쿠웨이트 무바라크 공군 기지서 공군기로 갈아 탄 노 대통령 일행은 3,700여 장병들이 주둔하고 있는 자이툰 부대에 오전 7시쯤 도착, 전국민의 가슴을 뭉클케 했던 ‘감동의 두 시간’을 시작했다.

사단장 황의돈 소장과 군 지휘관, 장병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 가운데 지프를 타고 지휘통제실로 이동한 노 대통령은 이라크 치안 상황과 부대 현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정말 장하다”는 말로 거듭 격려했다.

이어 12여단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 노 대통령은 장병들과 자율 배식해 식사를 한 뒤 즉설 연설에서 “여러분이 대한민국 외교력”, “반가움을 넘어 감사하다”며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이어 찾은 곳은 장병들의 내무실과 부대내 병원. 그러나 여기서 ‘사고’가 터지고 만다.

노 대통령이 내부실 시찰을 마친 후 병원으로 가기 위해 지프에 오르는 찰라, 한 장병이 “한 번 안고 싶습니다”며 대열에서 뛰어 나와 노 대통령을 안고 한 바퀴 돈 것. 지프에 오른 노 대통령이 살짝 떨군 눈물은 군인들의 가슴속에 아로 새겨졌다.

결코 짧을 수 없었던 2시간. 대통령과 사사건건 일전을 불사하지 않을 태세로 연일 지면을 달구어 오던 몇몇 신문들마저도 기사와 사설에서 “잘 했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출처: 주간한국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42&aid=0000003290




2002년 대선때 노무현후보의 대선광고 '상록수'



노무현에 관한 다른 포스트
꿈과 희망의 군국주의자 노무현
http://blog.naver.com/dhrtntngusal/80053838191


펌질하면서 계속 머리가 아픔...눈물 참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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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전용기 도입.a380 또는 보잉747.. 오세철 명예교수 사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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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2006년도 노무현 시절때도 구입하려했는데 한나라당이 지독하게 반대해서 "경제가 존내 어렵잖아 ㅅ발!' 이래서

결국 못샀다. 참여정부가 '이거 2008년 도입예정이라 어차피 우리가 타려고 사는것도 아냐! 다음번 대통령이 탈거라니까!'

이렇게설명해도 한날당은 '사면 안돼!'라고 하면서 여기저기 참여정부 욕을 하고 다녔다.

경제가 어려운데 잘난 대통령 전용기 사는데 돈쳐들일 생각이나 하고있다고 욕할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했던 모양.

아무튼 그랬던 한나라당이....드디어 정권을 잡고...

이젠 지들이 대통령 전용기 구입을 하려고 한댄다.

...그래서 옛날 한나라당이 노무현 전용기 구입 반대하던 기사까지찾아봤음...




요약:

노무현대통령이 2008년 도입을 목표로(2007년에 본인 임기 끝이므로 본인은 이용불가능!)

전용기를 들여오려했으나 한나라당에서 경제가 어려운데 그런거 살 돈있으면 빈곤층이나 신경쓰라고 반대. 결국 무산.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취임전 에도 다시 한번 전용기 도입을 추진했으나 한나라당의 무관심속에 무산.

그리고 한나라당이 정권잡은 지금. 대통령 전용기 구입 검토중...


무역수지 연일 흑자때리던 노무현때도 경제가 어렵다며 전용기도입 결사반대한 사람들이...

지금 IMF이후 최악의 상황벌여놓고 전용기 사겠다고 삽질을 하고 있다.

왜 이런 걸까...왜 이런 바보짓을 한걸까.

아래 보기 중 고르시오.

1. 막상 대통령 되어서 여기저기 외국 돌아다니다보니 '아 없으니까 존내 불편하네 씨바...사긴사야겠네...'하고 생각하게 됨.

2. 막상 대통령 되어서 여기저기 외국 돌아다니다보니 '아 씨바 나만 없네...' 하고 생각하게됨

3. 밀리터리 오타쿠 노무현 시절에 구입했다간 밀덕취향 전용기를(유사시 미쓸 장착가능) 구입했을테니 일단 반대

4. 노무현이 존내 싼거 고를까봐 일단 반대.

5. 그땐 진짜 진심으로 반대 했는데 대통령 6개월 해보니 스스로 너무 잘한것 같아서 자기스스로 자기에게 상을 줌, '셀프시상'


수능에 이런 문제 나오면 보기 전부 정답인정.


*도입예산 299억 부분은 계약금이라거나 뭐 그런 부분인것 같다.

실제 기사에선 비행기 가격+개조비용까지해서 1900억 까지 보고 있음.

경제 어렵다고 못사게 하더니 경제가 imf이후 최악인 지금은 무슨 돈으로 비행기를 사려고...인천공항 판돈, 수돗물 판돈으로 전용기 살거냐...


씨바 니가 돈벌어서 사.


위 이미지는 전용기 관련 부분만 발췌한 것임..

기사 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12&aid=000195249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62&aid=0000001243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79560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98&aid=0000197664&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23&oid=156&aid=0000000499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250468


후속기사..ㄷㄷㄷㄷㄷ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2244265
 a380 보잉747 둘중 하나로 고려중.
a380가격은 3억달러 ㄷㄷㄷ
747은 2억달러 ㄷㄷㄷ
이거 전용기로 개조하면 돈 또 들어갈테지.
---

이건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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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덤...

다음 블로거뉴스 중.

5년간 절에도 안간 권양숙 여사

http://bud1080.tistory.com/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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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노무현은 안그래쪄염~ 수돗물 민영화, 광우병, 노무현 ~ 수돗물 민영화, 광우병, 노무현

 

기고]물산업 육성대책, 불필요한 오해 없어야 -

-최근 ‘수도사업 민영화’라는 내용의 비판기사가 자주 언론에 게재되고 있다. 주요한 내용은 이렇다. 정부가 지난 7월16일 발표한 ‘물산업육성 5개년 세부추진계획’의 내용이 겉으로는 물산업을 육성한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수도사업을 민영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몇 가지 외국에서 실패한 사례를 들고, 향후 우리나라의 모습이 바로 이런 외국의 모습이라고 단정한다.
하지만 이는 기우다. 우선 우리나라와 실패한 나라와의 사정이 다르다. 먼저 상하수도 보급률부터 크게 다르다. 실패했다고 예시하는 나라들의 대부분은 상하수도 기반시설이 잘 구축되어 있지 않아 인프라 개선을 위한 투자가 필요한 곳이다.
-

현 정권에 아부를 떨고싶어 조중동 한 귀퉁이에 사설이랍시고 어젯날짜로 올렸을법한 윗 글은

안타깝게도 '2007년 8월'에 노무현정부의 수돗물민영화 정책때문에 올라온 글입니다.

 

물산업육성 구상자체는 ys때부터 시작되었고

구체적인 청사진-물산업지원법 2008년 제정계획-은 노무현때 나온겁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6&aid=0000067648


 

찬성한다는게 아니니 멍충이들은 닥쳐주시고,.

뇌사모들이 '노무현은 안그랬쩌여!!!'이럴까봐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얘기를 하려

고 윗 부분을 발췌했으니 딴소리 말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77&aid=0000000462&

보도해명] 동아일보의“헛물 켜는 국가 물관리사업”보도에 대하여 (환경부의 반론보도)

"2007-09-18 15:40"

 

아래 내용은 환경부의 반론보도중 환경부가 스스로 자기네 입장이라고 밝힌것을 발췌한겁니다.

 

-상하수도 사업의 비효율 제거 : 지자체가 사업과 사업을 독점하던 것을 사업(공사 또는 민간)과 관리감독(지자체)의 분리를 통한 경영합리화   

-- 물산업 경쟁력 제고 : 제도개선, 시설투자, 핵심기술고도화 및 우수인력 양성, 물산업 해외진출 지원 등을 통해 국제 경쟁력 강화

-⇒ 민간참여 확대, 소수기업에 의한 시장확대, 서비스 표준화 및 개방화 등 국내외 여건 변화에 맞추어 물산업육성대책을 추진하게 된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판단됨

-ㅇ 물산업육성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물산업지원법」 제정 등(’08)

 

이명박정부와 노무현정부가 하는 말이 똑같습니다.

현재 이토록 문제가 되고있는 물산업지원법은 이미 2007년에 목표로서 들어가 있던거구요

 

괜히 노무현은 안그랬쩌염~ 해서 스스로 멍청하고 맹목적인 우민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또한

http://www.koreapork.or.kr/sub2_view.html?Ncode=pignews&keyfield=&keyword=&number=24723&page=4&viewtype=1

노무현정부는 검역조건강화이행을 조건으로 참여정부는 뼈있는 쇠고기 완전개방을 추진합니다.
그런데 미국애들이 검역조건공표만으로 개방해달라 요구해서 결렬됩니다.

이걸 MB가 이행약속조건으로 풀어주는 바람에 욕을 먹고있는거구요.

 

즉...노무현대통령의 허가 내지는 지시아래에서

미국과 사료금지조치강화를 실행하면 쇠고기월령제한을 풀어주고 뼈도 수입하겠다고 제시를 했고

이에 미국이 그러지말고 강화약속만하면 (MB수준) 풀어줘~ 라고 요구해서

결렬됐다는내용입니다.

 

쇠고기청문회 도중

강기갑의원이 들이댄 노무현정부 방침문건은 2007년 9월이고

성 전 실장이 "노무현은 30개월에서 한발짝도 나가지말라했다"는건 12월에 그랬단 얘깁니다.

인수위 보고는 그 시기가 모두 지난 이후인 1.4일이구요.


 

인수위 보고라는 타이틀을 달고있긴합니다만

1.4일에 설마 농림부가 인수위의 지시를 받아 미국과 협상했을것이라고 상상하는 분은 없겠죠?

당연히 노무현정부의 지시를 받아 미국과 협상한거죠.

또한 농림부가 설마 엄연히 당시대통령을 제껴두고 인수위에만 협상결과를 보고했으리라 망상하는 분은 없겠죠?

농림부장관은 노무현이 임명했고 노무현퇴진과 함께 사라질 사람이라는것을 다시한번 염두에 두시면

그런 상상 망상은 하지 않으실겁니다.

 

 

 

이렇게까지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눈에 씌인 콩깍지를 벗질 못하고

'노무현은 그들이 들어주기 불가능한 조건(동물사료즉시금지)을 걸어서 일부러 협상을 결렬시키려 한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할수도 있습니다만...

협상결렬시켜서 얻을수있는 이득이 뭐가 있는지 생각해보고

그래도 생각이 그대로라면 그냥 그렇게 믿는게 편하시겠다는 생각밖에..


현 대통령이 잘했단 얘기가 아닙니다...그리고 노무현대통령이 못했다는 얘기도아닙니다.

다만 노무현이 뼈없는 쇠고기, 30개월 제한을 끝까지 지키려 했다는 일부사람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를 드리려고 글을 씁니다.

 

 

 

 

 

 

 

 

mb가 하도 삽질을 해대니

사람들이 다시 노무현을 찾는군요...

하지만 노무현이 무슨 GOD도 아니고, 실책이 전혀 없었다거나 완전무결한 예언자는 아닙니다.

그도 사람이고 실수도 하고 국민의 정서와 동떨어진 일을 하기도 하는겁니다.

 

요즘 미친노빠들의 노무현 찬양글이 넘쳐나는데 이건 좀 자제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난 내가 노빠라고 생각했었는데.....노빠라는 단어는 완전 구제불능의 꼴통을 가리키는 말이더군...

그시절에 서프같은 꼴통사이트 안들어가봐서 (황우석사태때 멍청함을 온누리에 떨친 그 사이트...ㅋ) 몰랐는데

노빠 너무 심각함.

 

 

줄기세포때는 '미즈메디 알바'

디워때는 '충무로 알바'

이번엔 '한나라당 알바'

 

논리가 후달리면 저 샛끼 알바다!!! 해버리면 그만.

마녀사냥 맞네.

 

비슷한 것으로는

 

자신을 추종하는 십만신도에 둘러싸여

수입반대시위를 '사탄의 조화'라 말씀하시는 어느 개신교 목사님.

그의 말에 신도들은 '아멘~!'하고 답할거다.

 

 

서로 입장은 다르지만 둘다 똑같은 짓을 하고 계심.

 

 

가상의 적을 애써 설정까지 하셔서 증오를 키워나가는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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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메모... 광우병...프리온...

 

 

 

 

 

 

 

노무현 메모...방송을 안봐서...(이미지는 인터넷에 퍼진걸 펌)

노무현 지못미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지?

 

 

 

노무현 딴지 이너뷰( 대통령 되기 전)

http://www.ddanzi.com/articles/article_view.asp?installment_id=53&article_id=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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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회군 , 심재철, 유시민  ...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이한열 열사 부천 성고문 사건 호헌조치 등등등-_-;;

서울역 회군 , 심재철, 유시민  ...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이한열 열사 부천 성고문 사건 호헌조치 등등등-_-;;

 

 

http://610.or.kr/museum/bbs/sub03e_000.html

 

아기공룡 둘리에 관한 슬픈 오마쥬..를 보셨을진 모르겠는데

(귀차니즘으로 인해 링크는 없!간단히 설명하자면...

중년이 된 둘리와 세월에 찌든 옛 친구들의 이야기입니다.)

그 최규석 작가님의 작품입니다.

 

이걸보면 모...친북좌파니 좌빨이니 하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똘x들도 뭔가 느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돌던지고 운동하던 세대는 아닙니다만

대학생 형들이 데모하던걸 본 기억은 있네요.

이제 생각해보니 저 만화의 배경이 되는 바로 그 80년대 중반입니다.

그리고 그 데모하던 형들이 지금의 소위 386세대죠.

 

집 근처에 배재대가 있었는데

그다지 대입커트라인이 높지않은 대학중의 하나입니다만...

배재대학생들도 건물에 빨간 플랑을 걸고 전두환 물러가라 써두고...

격동의(!) 80년대 중반에 번화가도 아닌 우리집 앞 좁아터진 주택가 1차선 도로에서 형들이 시위를 했었죠.

마스크 쓴 형누나들이 드럼통 굴려가면서...

그 좁은도로에 양옆에 주택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진압대는 최루탄을 쏘아대고...

-마스크를 썼던 이유는 지나가시던 아부지한테 디지게 맞는걸 방지한다거나 뉴스에 쌩얼뜨는게 부끄러워서 그러는게 아니라

경찰의 카메라에 얼굴이 찍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랍니다.

시위할때 경찰은 따로 카메라 촬영조를 운영합니다. 채증조? 뭐 그렇게 부르던데...

얼굴찍히는 순간 그 학생은 블랙리스트~

 

여기서 또 '공부하라고' 비싼 등록금치러가며 대학보내놨더니 

어줍잖은 영웅의식,사회의식 가져가지고 공부는 안하고 데모만 해쌌는다..라고 욕할수도 있는데

사실 대학생은 시위하는데 최적의 신분이죠...

직장인이 회사 결근하고 데모하는것보다...농민분들이 논밭 내버려두고 버스끌고 서울 상경하는것도 쉬운일이 아니고

주부들이 애 팽개치고 데모하는것도 좀 아니고...어린 중고딩한테 험한일 시킬수도 없고

결국 성인이되 아직 지고있는 삶의 짐이 '비교적' 적은 대학생이 최적의 신분이라는겁니다.

더구나 중고교 뻔한 교육을 벗어나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은 역사도 좀 들춰보고

신문에 실리지 않은 비리들도 알게되고 그러면 행동을 하는것이 아주 떳떳한 일이 되어버리구요.

그래서 나가는겁니다. 거리로.

 

 

아무튼

최루탄 터지는 길바닥에 있으면

진짜 이렇게 됩니다.

 

궁금하신분은

청양고추 말리지 않은 것을 칼로 째서 그 즙을 손가락에 묻힌다음

코에 아주아주 가까이 대고 호흡하시면 약하게나마 느낄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손가락을 코밑과 눈밑에 문지르면 통증(?)이 비슷해집니다.

(문질렀을시 죽어도 책임 못짐-_-)

 

최루탄 마지막으로 본게 90년대 중반 한나라당이 노동법(정리해고법)을 날치기 통과해서

근로자아저씨들(대학생 아님)이 대전시내 한복판에서 시위할때 터진것이었는데

그때 아무생각없이 시내 놀러나갔던 꼬꼬마는 아주 그냥 디질랜드...

그때 오락실-_-에 있었는데 겜하다 자꾸 눈물이 흘러서 이상하다싶어서 주위를 둘러보니

ㅅㅂ 몇개나 터뜨린건지 실내인데도 자욱한 연기만 가득하고 사람들은 화장실에 숨어서 울고--있더군요..

밖에 나와보니 이건 뭐 허연 연기가 자욱한데 건물들은 문이고 창문이고 다 닫혀있고

사람들이 죄다 남녀없이 눈물콧물 흘리면서 달리고있어요 ㅋㅋ

(지금 생각하니 영화 '미스트'로군요..)

아무 건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매운연기 들어온다고 죄다 셔터내려져있고...

잠긴 문앞에 붙어서 사람살리라고 두들기다가-_-;

뒷골목으로 들어가 울면서 노점 떡볶이로 배를 채우던( 좀 이상하지만;;)

기억이 있습니다. 유난히 톡! 쏘던 그때 그 떡복이의 맛은 최루가스 때문일겁니다.

최루탄은 매우면서 뭔가 불쾌한 화학약품냄새가 첨가된듯한 느낌이 났습니다.

참고로...

처음엔 그냥 숨막히기만한데...눈물콧물 나는 순간 가스가 녹아들어가면서 얼굴이 불타는 느낌-_-이 납니다.

 

옆으로 샜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하여튼 80년대 중반 대학생 횽아들 시위하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움이 될까...해서

 

1.박종철 고문치사사건

87년 운동하는 선배의 소재를 물었으나 대답을 하지않자 물고문을 해서 결국 학생 하나가 죽은 사건입니다.

고문사실을 숨길수없게된 경찰은 단 두명만 물고문에 참여하였다고 축소하였고 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하던 치안본부장은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는 택도없는 해명을 했습니다. (유행어 등극)

한편...정호용아저씨가 '사람이 사람을 어케 때리냐'면서 고문사실을 부인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 아저씨 광주항쟁때 특전사령관-_- 사진보니 잘만 때리드만...

이 아저씨도 국방부장관 내무부장관에 국회의원 두번이나 합니다(국민개X끼론의 또하나의 근거)

이 사건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안상수검사에 의해 진상이 밝혀지게됩니다

(이 단체가 최근 삼성 비자금폭로하신 그 단체임)

그리고 '안상수'검사는 현 한나라당 국회의원입니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가입한 단체

2. 민가협-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군사독재정권으로 국민들이 억압받던 1985년 12월 12일양심수를 후원하기 위해 결성된 사회운동단체이다. 대부분 양심수들의

가족들이 참여하고 있다. 사무실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3가 108-3에 위치하고 있다.

 

-만화에 나온대로 그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주로 참여하는 단체입니다. 이 단체의 노력으로 고문기술자 이근안이가 결국 자수..-

 

3. 이한열

 

1987년 6월 9일, 1,000여 명의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국민평화대행진(6·10대회)을 하루 앞두고 이 대회에 출정하기 위한 연세인결의대회를 마친 뒤,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중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한열이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다. 그는 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그해 7월 5일 뇌 손상으로 인해 심폐기능이 정지됨으로써 결국 사망하였다.

1986년과 1987년은 학계·문화계·종교계 등 각계각층에서 민주화 열기가 고조되었던 때로, 1987년 5월 18일 박종철()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직후에 발생한 일이어서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사후 5일이 지난 7월 9일 '애국학생 고 이한열 열사 민주국민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에는 학생·시민·정치인과 재야단체 회원 등 총 7만여 명이 참석하였고, 시신은 광주 망월동 5·18묘역에 묻혔다.

박종철고문치사사건과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전두환() 정권은 국민들에게 더욱 깊은 불신감을 심어주었고, 이에 분노한 국민들의 항쟁이 걷잡을 수 없을 번져나갔다. 이어 전국 33개 도시에서 하루 100만여 명의 군중이 시위를 벌이는 등 이른바 6월항쟁이 정점에 이르게 되자, 전두환 정권은 시국 수습을 위해 6월 29일 당시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이었던 노태우()로 하여금 대통령 선거의 직선제 개헌을 발표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6·29선언이다.

1987년 숨진 이한열과 박종철은 14년 만인 2001년에야 권위주의 정권에 항거하다 숨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결정되어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명예를 회복하였다.

 

 

중간에 설명없이 만화로만 짧게 나온...

4. 부천경찰서성고문사건

 

학생들의 반()군사독재 투쟁시위가 격심하던 1986년 6월, 부천 시내에서 학생시위대에 끼여 시위를 하던 학생 및 시민들이 시위 진압 경찰대에 의하여 체포되어 갔다. 그때에 체포된 여대생 권인숙은 부천경찰서 지하 조사실에서 문귀동 경장에게 조사를 받았는데, 반말과 욕설은 물론 여성으로서 가장 치욕적인 성적 고문을 당하였다.

조사를 받고 풀려나온 권인숙이 자신이 당한 모욕적이고도 비인간적인 경찰의 야만적 행동을 세상에 폭로하면서 성고문을 자행한 경찰을 사회에 고발한 데서 사건이 비롯되었다. 급기야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였고, 7월 16일 수사를 담당 지휘하던 인천지방검찰청 특수부장 김수장이 자체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권인숙에 대한 성고문 사건은 사실무근의 허위 조작 발표라고 고문사실을 은폐하여 경찰을 비호하고 나왔다.

그에 격분한 권인숙은 각 사회운동단체와 인권옹호단체 등에 적극적으로 호소하기에 이르렀으며, 그 소식은 많은 여성들과 민권 단체들의 분노를 야기시켰다. 그리하여 7월 19일 명동성당에서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부천서 성고문 사건김대중 용공 조작사건 폭로 규탄대회'를 갖고 강력히 항의하였다. 권인숙은 권력의 폭압에 굽히지 않고 투쟁에 앞장을 섰고 인권 변호사들이 무료 변호에 나서 그녀를 도운 결과, 재수사가 추진되어 문귀동은 실형선고를 받고 파면을 당하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고문이었는지는 검색해보세요. 개새x들...

 

중간에 전두환이 발표한

5. 호헌조치

퍼올려니 너무 길어서-_-;

아니 대통령이 헌법 지키겠다는데 왜 문제란거야? 싶은데..이때 대통령선거는 간선제였습니다.

소위 체육관대통령이라고 해서..박정희 때 시작한건데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이름하에 선거인단이 간선으로 대통령을 선출합니다.

쿠데타에 성공한 전두환이가

김대중한테는 사형선고때리고 김영삼은 가택연금시킨다음 지 혼자 단일후보로 출마해서 만장일치-_-;;;;;로 대통령을 합니다.

80년대 중반...민주화 열망에 의해 국민들은 당연히 직선제를 요구하게 되는데..

전두환은 87년 4월에 ㅅㅂ 직선제 웃기지말라그래 난 헌법에 명시된 간선제를 수호할테야! 라고 발표합니다.

이게 호헌조치입니다.

 

당연히 국민들이 반발하고...박종철 치사사건의 전모가 밝혀짐과 맞물려

전국적으로 백만이상이 모인 시위가 벌어집니다.

쏴죽이기엔 너무 많았던지 하여튼 전두환은 쿠데타 동기 노태우를 앞세워

'직선제 하죠...'하고 결국 꼬리를 내리는데 이 꼬리내린 선언이 노태우의 '6.29선언'입니다.

그리고 벌어진 대통령선거...이제 민주정권이 들어서나 했더니...

김영삼 김대중이 단일화에 실패하여 국민의 표가 갈리는 바람에 전두환친구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아무리 표가 갈려도 그렇지.... 최소30%는 노태우 찍은 양반들이 있었단 얘기...

(국민개x끼론의 근거가 되는 부분이죠 ㅋㅋ)

 

백만명이 길거리로 나와 시위하며 얻어낸 직선제인데 우리 국민에겐 돼지목에 진주였나봅니다.

이후 국회상황은 국민들이 독재정권을 쬐끔심판해서

김영삼+김대중+김종필-_- 삼형제 크로스가 노태우를 압도하는 형국이었습니다.

노태우의 민정당은 후대가 없는 고자정권인데다 당장 여소야대형국이라

과거의 서슬퍼런 시절과 달리 자꾸 김대중 김영삼때문에 청문회도 하다가 노무현한테 꾸중도 듣고

비리도 까발려지고 그렇게 됩니다.

계속 이렇게 당하면 안되겠다 싶은 찰나. 주변을 둘러보니

'이대로 가다간 저 녀석이 다음 대통령이 되겠어...젠장'이러면서 제1야당총재 김대중에게 눈을 흘기는

김영삼 김종필이 보입니다. 그리하여 노태우의 민정당은  김영삼,김종필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김영삼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그토록 싸워왔던 민정당 독재정권과 합당하는 쌩쑈를 벌입니다.

민정당독재정권과 합당하게되면 민정당지지세력+자기 지지세력이 수월하게 김대중지지세력을 압도하게되므로

대통령을 거저 먹을수있다는 계산을 한거죠. 김종필의 충청도표는 덤...

 

 

아무튼 영삼옹은 노태우의 민정당과

합당합의 후 자신의 통일민주당을 해체하는 절차를 밟습니다.

영삼옹이 "해체에 이의 없습니까?"하고 요식적으로 물어보는 찰나

어떤 간지쟁이 국회의원이 "이의있습니다!" 하고 외칩니다.

김영삼총재가 못들은 척...하면서

"그럼 이의가 없는 걸로 알고..."하고 넘어가려는 찰나

"전 반대합니다!!" 를 외치고 ...다른 무리들에 의해 회의장 밖으로 끌려나갑니다-_-

 

저분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이시기 의정활동하시면서

이해찬씨.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과 함께 굉장했다고 하던데...잘-_-;;;

 

아무튼 이후...

영삼옹을 강력히 지지하던 경남지역과

구체적으로 군사정권에 광적인 지지를 보내던, 국민개x끼론의 표본이랄수 있는 그 시절의 경북지역이 합쳐지게 되는 셈인데...

독재정권 태클걸라고 여소야대를 만들어줬더니 국민 뒷통수를 쳐? 에라이~! 이러면서 김영삼을 심판할줄 알았던 경남이...

나름 탄압받는 민주인사였던 김영삼을 지지하며 소위 '부마사태'의 고장이던, 그래서 아주  제정신인줄 알았던 경남이

군사정권과 야합하며 거의 변절을 한 김영삼 후보에게  70%가 표를 주는 삽질을 합니다.(김대중 영남지역 10%득표)

이전선거에서 단일화에 실패하여 군사정권에게 패배한 교훈을 거울삼아 지가 좀 후달리는거 같으면 양보좀 해야지

이건 뭐 군사정권과 단일화를 해버리는 역발상.

 

 

그리하여  YS는 DJ를 밀어내고 대통령에 당선되고 역시 합당을 했던 김종필을 축출합니다

당 이름을 '민자당'으로 했다가 '신한국당'으로 바꿉니다. 이게 나중에 한나라당으로 바뀌고...

한때 박근혜씨였는지 이회창씨였는지 '뉴 한나라당'이라는 구호를 내 걸었는데

이걸 보고 사람들이 뭐여..신한국당을 풀어쓴거네? 하고 비아냥거리고 그랬죠 ㅋ

 

종필옹 지못미...일부 충청도 사람들은 '그렇게 밀어줬는데 그모양이냐'하기도 하지만

사실..영호남 몰표에 비하면 쫌 미안한-_- 정도. 그래도 그 덕에 9선이나 했으면 뭐...

 

 

이건 덤.. 소위 '서울역 회군'

80년 5월15일...

전두환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학생&시민이 10만명이나!! 집결한 대규모시위입니다.

이 엄청난 인파가 청와대로 진격해서 단번에 민주화를 이뤄내려고 했는데...

당시 서울대학생회장이던 심재철의원...과 서울대교수이던 이수성 전 총리가

유혈사태를 우려하여 철수를 주장합니다. (전두환이 콜한 군부대가 근처에서 스팀팩 맞으면서 대기중)

그런데 당시 서울대대의원회의장이던 유시민씨, 그리고 신계륜씨(이분도 현 국회의원)는 진격을 주장하죠.

 

뭐 결국은 심재철씨의 뜻대로 철수하긴 했습니다만...

만약 그때 철수하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생겼을수도 있으나 그걸 넘어서 80년도에 민주화가 이루어졌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때 흘리지 못한 피를 사흘 뒤 광주에서 다 흘리게 되죠.

이 서울역 회군 이틀뒤에 전두환이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그다음날부터 광주로 탱크조이기 들어갑니다.광주항쟁...

그리고...

계엄령을 선포한 전두환은 군법정에서

 문익환 이문영 예춘호, 고은, 김상현, 이신범, 이해찬, 조성우, 설훈, 송기원, 이석표씨 등에게 내란음모죄로 실형을 선고.
서남동, 김종완, 한승헌, 이해동, 김윤식, 한완상, 유인호, 송건호, 이호철, 이택돈, 김녹영, 김홍일(김대중 아들), 김옥두씨 등이 계엄법 위반혐의로 실형선고..(네이버 백과 펌-_-)

(뭉뚱그려 중형인데 김대중씨는 사형선고를 받았죠-_-)

이 재판에서...피고인 대부분이 자백내용을 부인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다리 저는건 박정희때 받은 고문때문이구요... (제가 틀렸습니다. 고문때문이 아니라 박정희대통령 시절 교통사고에 당해서 그렇답니다)전두환시절에는 김대중전 대통령 아들들도 제 아부지때문에 고문을 받았다는군요. 김대중전 대통령의 유일한 '흠'인 지나친 자식사랑도 이해가 좀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피고인들이 자신들의 자백내용을 전부 부인하는가운데...

여기서 서울역 철수의 주인공인 심재철씨가... 홀로 자백내용을 죄다 인정해버립니다.

--

그가 진술하는 도중 법정은 시끄러웠다. 그의 공소사실 인정이 가져올 엄청난 결과에 생각이 미치자 방청하고 있던 가족들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고 한다.
"너 미쳤어? 너 왜 그래?"라며 울부짖던 이는 이해찬 총리였다고 한다. 조성우씨도 그의 허위진술에 대해 포효했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만은 "심 동지, 고생 많았지?"하며 그를 위로했다는 전언이다.
-

그 이후...민주화 운동관련자는 변변히 취직도 못하던 그시절에 관련자중에서도 아예 주인공급인

심재철씨는 초능력을 발휘하여 영어교사-문화방송 기자를 거쳐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됩니다.

유시민씨는 지금도 심재철씨가 그때 그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관련자들은

2003년에야 명예회복이 되고 김대중전 대통령은 임기가 끝난 2004년에 명예회복이 됩니다.

 

이것도 덤...

만화의 배경이 되는 시기 (80년대 중반)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고문을 받았던 김근태의원의 증언입니다. 
본인은 9월 한 달 동안 9월 4일부터 9월 20일까지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각 5시간 정도 당했습니다.
전기고문을 주로 하고 
물고문은 전기고문으로 발생하는 쇼크를 완화하기위해 가했습니다. 
고문을 하는 동안 비명이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위해 
라디오를 크게 틀었습니다.
그리고 비명때문에 목이 부어서 말을 하지 못하게 되면 
즉각 약을 투여하여 목을 트이게 하였습니다. 
(어지러운듯 말을 중단하고 난간을 붙들면서 잠깐 쉬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9월4일 각 5시간씩 두차례 물고문을 당했고9월5일9월 6일 
각 한차례씩의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골고루 당했습니다. 
8일에는 두 차례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했고. 
10일 한차례13일.......... 13일의 금요일입니다. 
9월 13일 고문자들은 본인에게 
최후의 만찬이다.예수가 죽었던 최후의 만찬이다. 
너 장례날이다. 이러한 협박을 가하면서 두차례의 전기고문을 가했습니다..... 

그 다음에 20일날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한차례받았습니다. 
그리고 25일날 집단적인 촉행을 당했으며 
그 후 여러차례 구타를 당했습니다. 
물론 잠을 못잔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밥을 굶긴것도 대략 절반쯤됩니다. 
고문때문에 13일 이후에는 밥을 먹지 못했고 
그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밥을 먹지못합니다. 

가방을 갖고 다니면서 그 가방에 고문도구를 들고 다니는 건장한 사내는 
본인에게 
장의사 사업이 이제야 제철을 만났다. 
이재문(남민전 사건의 주범옥사했음)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느냐.. 
속으로 부서져서 병사를 했다. 
너도 각오해라. 지금은 네가 당하고 
민주화가 되면 내가 그 고문대 위에 서줄테니까 
그때 너가 복수를 해라 

이러한 참혹한 이야기를 하며 본인에 대한 동물적인 능욕을 가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문을 받는 과정에서 본인은 알몸이 되고 
알몸상태로 고문대 위에 묶여졌습니다.

추위와 신체적으로 위축돼 있는 상태에서 본인에 대해 
성적인 모욕까지 가했습니다. 
말씀드리면 제 생식기를 가리키면서 

이것도 좆이라고 달고다녀? 민주화 운동 하는놈들은 다 이따위야! 

이렇게 말하자면 깔아뭉개고 용납할수없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고문을 할때는 온몸을 발가벗기고 눈을 가렸습니다. 
그 다음에 고문대에 눕히면서 몸을 다섯군데를 묶었습니다.
발목과 무르팍과 허벅지와 배와 가슴을 완전히 동여매고 그 밑에 담요를 깝니다. 
머리와 가슴사타구니에는 전기고문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 물을 뿌리고 
발에는 전원을 연결 시켰습니다. 

처음엔 약하고 짧게 점차 강하고 길게 강약을 번갈아하면서 
전기고문이 진행되는 동안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에 다가와 
(이때 방청석에서 울음이 터지기 시작 본인도 울먹이며 진술함) 

이때 마음속으로 무릎을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
(방청석은 울음바다가 되고 심지어 교도관들조차 숙연해짐)
는 노래를 뇌까리면서 과연 이것을 지켜내기 위한 인간적인 결단이 
얼마나 어려운것인가를 절감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때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연상했으며 
이러한 비인간적인 상황에 대한 인간적인 절망에 몸서리쳤습니다. 

(방청석 통곡) 

그들은 고문을 하면서 
시집간 딸이 잘 사는지 모르겠다. 

아들놈이 체력장을 잘 치뤘는지 모르겠다.는 등 자신의 가족들에 대한 
애정어린 말들을 주고 받았으며 본인에게도 이야기 했습니다. 

어떻게 이처럼 고문과 폭력적 행위를 자행하는 자들이 
개인의 가족들에게는 인간적인 사랑을 줄 수 있단 말입니까? 
이렇게 양면성이 공존할 수도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인간에 대한 희망이 다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고문을 전담하던 자 중의 한사람은 -이름을 밝히진 않겠지만- 
나중에 혼자서 제 손을 잡고 이야기하기를

고문하는것을보고 구역질이 났다. 여기서 빨리나가라. 
허위로라도 다 인정해라. 여기있으면 당신은 죽는다고 울면서 얘기했습니다. 

결국 9월20일이 되어서는 도저히 버텨내지 못하게 만신창이가 되었고 
9월 25일에는 마침내 항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만 더 버티면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된다는것을 알았지만 더 버틸 수 없었습니다.

그날 그들은 집단폭행을 가한 후 본인에게 알몸으로 바닥을 기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빌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요구하는대로 할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쓰라는 조서내용을 보고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산책 - 강준만(인물과 사상사)/  
이분은 지금도 고문후유증이 남아있죠..딱 보면 그게 보일정도...

 

시위얘기가 많은데

2002년 월드컵을 겪은(?)분들이  그 응원인파속에서 느꼈던 다 한마음이되는 묘한 일체감을

80년대를 보냈던 386세대들은 저 엄청난 시위를 치루면서 느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물론 훨씬 더 진지하고 절실했겠죠)

마찬가지로 월드컵때 그 일체감에 겨워 감동에 떨었던 어린세대라면 386세대의 성취감을 어느정도 이해할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결국 노태우가 당선됨으로 해서 황당하게 진행되어가긴했지만...)

그런 일체감을 겪은 386세대이기에 2002년 대선에서도 젊은사람의 결백성이 투영된 노무현후보를 위해서

다시한번 부조리에 투쟁하던 80년대의 느낌을 회상하며 제돈 걷어 마치 시위하듯 열성적인 봉사를 했던게 아닌가.

그게  2004년 탄핵때도 그렇구요. 뭐 그런생각을 합니다.

 

( 386세대가 모두 엄청 똑똑해서 의식이 확 깨어있다거나 하는식으로 칭송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노태우 찍은 30%하고 비슷한, 평범이하의 사고능력으로 그냥 선배들 언변에 반하고 의식없이 그냥 일체감,소속감,영웅심으로

날뛴 양반도 있겠죠. 소위 노빠중에도 수구꼴통만큼이나 앞뒤 꽉 막혀 그저 찬송가부르듯 하는 양반도 많은것처럼요.)

 

 

 
 

너무 길고 두서가 없어서 죄송합니다...

쓰다보니 너무 이것저것 올리고싶은게 많아서...아주 그냥 개판이네요.

그래서 정치는 관여하면 안되요 ㅎㅎ

 

너무 생각나는대로 검색되는대로 막 써서
나중에 시간되면 정리를 해야될것 같은데...

 

네이버 백과에서 많이 펐습니다. 

Posted by 부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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